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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돈과 죄의식’ – 왜 가난은 윤리를 흔드는가?

by memosttep 2025. 8. 6.

"나는 비범한 인간인가?"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가난한 대학생인 그는 이 세상에 정의를 세운다는 명목 아래 노파를 살해하고, 그 죄책감에 시달리며 붕괴되어 갑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소설을 통해 ‘돈과 도덕의 충돌’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그는 단순히 한 명의 살인자를 그린 것이 아니라, 경제적 절박함이 인간의 윤리를 어떻게 흔드는가에 대해 깊은 성찰을 던집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득 불평등, 빈곤,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도스토옙스키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가난은 죄인가?” “경제적 절박함은 인간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

도스토옙스키의 ‘돈과 죄의식’ – 왜 가난은 윤리를 흔드는가?

1. 라스콜리니코프와 가난의 철학적 역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극심한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대학생입니다. 그는 노파에게 물건을 전당잡히며 생계를 이어가고, 가족으로부터 보내진 소액의 돈에 일희일비합니다.

그는 ‘위대한 인간’은 법과 도덕을 초월할 수 있다는 니체적 사상을 내면화하며,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탐욕스러운 전당포 노파를 죽이면 그 돈으로 선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는 경제적 불안이 도덕적 판단을 흐리는 과정을 보여주는 매우 섬세한 심리 묘사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내면을 통해, 가난이 인간의 도덕적 경계를 어떻게 침범하는지를 천착합니다. 단순히 생존을 위한 선택이 아닌, 자기 정당화와 도덕의 합리화가 일어나는 순간들. 그 속에서 인간은 어느새 죄를 짓고, 그 죄의 무게에 짓눌립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결국 양심의 소리에 굴복하고 자수합니다. 이 과정은 경제적 현실과 윤리적 이상 사이의 갈등이 얼마나 깊은지를 문학적으로 보여주는 명장면입니다.

2. 가난은 왜 도덕을 흔드는가?

가난은 단순한 경제 상태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존감, 인간관계, 사회적 신뢰, 심지어 도덕성까지 흔드는 복합적인 현상입니다.

현대 심리학에서도 빈곤은 인간의 의사결정 능력을 저하시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현재의 생존에 집중하느라 장기적 도덕 판단을 할 여유가 없다.”는 연구 결과는, 도스토옙스키의 통찰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합니다.

즉, 도덕적 선택을 하려면 ‘여유’가 필요합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인간적으로는 선한 성품을 지녔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기에 잔혹한 선택을 감행합니다. 그는 결국 그 죄책감에 무너지고 마는 것이죠.

오늘날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반복됩니다.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부정 청탁, 탈세, 부당 행위 등 비윤리적 선택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들이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이 모든 것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불안정한 구조에서의 인간성 유지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3. 돈, 도덕,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할 것

도스토옙스키는 돈을 악마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돈을 둘러싼 인간의 내면적 갈등을 조명했습니다. 돈 자체가 악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집착, 그리고 그것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기기만이 인간을 죄로 이끈다고 말합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끝내 자수하고 시베리아에서 참회의 시간을 보내며 회복의 길을 걷습니다. 이는 도스토옙스키가 죄의식은 인간을 죽이지 않고, 되살릴 수도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윤리와 경제는 쉽게 분리되지 않습니다. 공정한 경쟁, 투명한 거래, 윤리적 소비 등 수많은 경제 활동 속에서도 우리는 늘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간에 자신의 중심을 지키는 힘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도덕성을 지닌 존재이며, 죄를 인식하고 회복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봤습니다. 그의 문학은 우리에게 경고하면서도 희망을 줍니다.

돈이 우리를 죄로 이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의식은 우리를 다시 인간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가 던진 이 문학적 질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경제적 갈등 속에 있는 우리에게 여전히 윤리적 나침반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