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흔히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을 통해 시장이 개인의 이기심에 의해 자연스럽게 조율된다고 설명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보다 17년 앞서 출간된 그의 또 다른 저서,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은 매우 다른 스미스를 보여줍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의 본성을 이기심보다 공감(sympathy)과 도덕감정(moral sentiments)에 더 가까운 존재로 보았습니다. 즉, 시장도 결국 인간의 감정과 윤리적 직관 위에서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도덕감정론』을 통해 시장 경제와 인간성의 접점, 그리고 경제를 움직이는 정(情)의 역할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탐구해보겠습니다.
1. 『국부론』 이전의 애덤 스미스: 공감의 철학자
많은 사람들이 애덤 스미스를 "이기심을 정당화한 경제학자"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경제적 효율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감정과 사회적 연대에 깊은 관심을 가진 철학자였습니다.
『도덕감정론』에서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공감하며, 그 고통에 함께 아파한다.” 즉, 인간은 철저히 계산적인 존재가 아니라, 타인의 감정에 반응하는 정서적 존재입니다.
이러한 공감 능력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도덕 판단의 근거가 됩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내 행동을 조절하고, 나아가 사회 전체의 규범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죠.
스미스가 강조한 이 ‘도덕적 공감’은, 훗날 『국부론』에서 말하는 시장 질서의 도덕적 기반을 이루게 됩니다. 즉, 자유로운 시장이 작동하기 위해선, 선한 시민의 감정과 판단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시장은 어떻게 인간의 감정으로 움직이는가?
스미스는 시장을 단순한 거래의 장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시장이야말로 인간의 욕망과 감정, 평가와 신뢰가 얽힌 복합적 사회 구조라고 보았습니다.
『도덕감정론』에서는 이런 표현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공정한 관찰자’의 시선을 내면화하며 행동한다.” 즉, 우리는 언제나 타인이 어떻게 나를 평가할지를 생각하며, 도덕적 판단을 합니다. 이러한 내면화는 시장에서도 그대로 작동합니다.
가령 소비자는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 윤리적 소비, 지속 가능성 등을 고려하며 지갑을 엽니다. 이는 단순한 가격 비교가 아닌 정서적 신뢰와 사회적 가치 판단</strong에 따른 행동입니다.
또한 노동자, 투자자, 기업가 모두 사회적 맥락 속에서 움직이며, 인간적 감정에 영향을 받습니다. 거래도 결국 사람 사이의 신뢰와 평판, 명예라는 비가격적 요소 위에서 작동합니다.
이처럼 스미스가 본 시장은 이기심에 기반한 완전한 자동시스템이 아니라, 공감, 신뢰, 정의감 같은 정서적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사회적 생명체'였습니다.
3. 오늘날에도 유효한 ‘도덕감정의 경제학’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오늘날에도 많은 경제학자, 윤리학자, 경영학자들에게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현대 자본주의가 윤리적 기반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체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공정한 경쟁, 탐욕적 경영, 환경 파괴 등은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가져오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에 대한 신뢰를 붕괴시키고 공동체를 해체시킵니다. 바로 이런 지점에서 스미스의 도덕경제학이 주는 통찰은 강력합니다.
또한 ESG 경영, 공정무역, 윤리적 소비 등은 모두 감정적 공감과 도덕적 책임의 확장판이라 볼 수 있습니다. 소비자는 이제 단순히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브랜드의 가치를 함께 사는 시대가 된 것이죠.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심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는, 이기심조차 사회적 규범과 공감 능력에 의해 조절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경제와 윤리의 조화일 것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이기심을 말한 경제학자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먼저 ‘정(情)’과 ‘도덕’을 강조한 철학자였습니다. 그가 설계한 시장은 차가운 이기심의 공간이 아니라, 따뜻한 공감의 공간이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경제를 어떻게 인간답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