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원하는 대로 소비하며 자유로울까? 아니면 자본이 만든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것일까?" 이 질문에 철학자 스피노자(Baruch Spinoza)는 흥미로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그의 욕망에 대한 철학은 현대 소비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지적 자극을 줍니다.
소비는 단순한 경제 행위가 아닙니다. 소비는 욕망의 표현이고, 욕망은 곧 자아의 구성과 깊은 관련을 가집니다. 이번 글에서는 스피노자의 철학을 바탕으로, 우리가 어떻게 소비를 통해 자본과 욕망 사이를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해보고자 합니다.
1. 스피노자의 욕망 철학: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다
스피노자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활동한 철학자로, 데카르트와는 달리 이성과 감정이 분리되지 않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바라봤습니다. 그는 “욕망(conatus)이란 존재가 자기 존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근원적인 노력이다”라고 정의합니다.
즉, 인간은 단지 ‘이성적’이거나 ‘감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가 욕망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욕망은 단순한 쾌락 추구가 아니라, 자기 보존과 자기 실현을 향한 에너지입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우리는 언제나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동력의 주체이며, 이 욕망은 외부의 자극과 만날 때 다양한 감정—기쁨, 슬픔, 질투, 기대—으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이 감정들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과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만듭니다.
욕망은 억제하거나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욕망은 우리 존재의 본질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욕망은 인간 행동의 출발점이자 존재 이유인 셈입니다.
2. 소비 자본주의는 어떻게 욕망을 설계하는가?
스피노자의 이론을 오늘날로 확장해보면, 현대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 구조를 정교하게 조작하는 시스템이라 볼 수 있습니다. 광고, 미디어, SNS는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고 방향을 설정하며, 그 방향은 대부분 소비 행위로 귀결됩니다.
우리는 제품을 구매할 때,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미지와 감정을 함께 소비합니다. 예를 들어 최신 스마트폰을 산다는 것은 단지 기능적 선택이 아니라, 그 브랜드가 상징하는 사회적 지위, 트렌드에 대한 민감성, 자기 이미지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우리의 욕망을 가공하고 분할하며 상품화합니다. 그리고 스피노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구조는 인간이 가진 본래의 욕망을 외부 기준에 따라 조정하고 왜곡하는 방식이라 볼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을 진짜로 원하는지 모르게 된다는 점입니다. 자본은 끊임없이 새로운 욕망을 생산하고, 우리는 그 욕망을 ‘나의 것’이라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이는 스피노자가 말한 ‘비자유적 욕망’의 상태와 매우 유사합니다.
3. 자유로운 소비란 가능한가? 스피노자의 제안
스피노자는 단순히 욕망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진정한 자유는 욕망의 부정이 아니라, 욕망의 이해로부터 나온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욕망을 없앨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외부 요인이 그것을 형성했는지 깊이 성찰하고 인식할 수는 있습니다. 이 인식이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욕망의 노예가 아닌, 욕망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현대 소비문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왜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고, 어떤 제품에 끌리는지 의식적으로 질문해보는 것은 소비를 통한 자아 확장을 좀 더 자율적인 방식으로 이끌 수 있는 출발점이 됩니다.
또한 스피노자는 ‘기쁨’을 중시했습니다. 그는 “자기 본질에 충실할 때 기쁨이 생긴다”고 보았고, 이는 의미 있는 소비, 가치 지향적 소비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공정무역, 친환경 제품, 윤리적 소비 등은 단순히 도덕적 선택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긍정하는 기쁨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결국 자유로운 소비란, 외부가 설계한 욕망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스스로 욕망의 흐름을 인식하고, 그것을 선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자본의 소비자가 아니라 존재로서의 소비자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