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시간은 곧 돈(Time is Money)”이라는 말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하루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경제적 성과가 달라지고, 시간 관리 능력이 곧 개인의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이 사고방식은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가지고 있었던 전통적 시간관과는 크게 다릅니다. 근대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시간은 단순한 흐름이 아니라 경제적 자원이자 화폐와 동일한 가치로 간주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돈’이라는 사고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이 글에서는 그 역사적 배경과 경제적 의미를 살펴보고, 오늘날 우리가 시간을 바라보는 태도를 다시 성찰해보고자 합니다.
1. 전근대 사회의 시간관: 자연과 공동체의 리듬
근대 이전, 특히 농업사회에서 시간은 지금처럼 엄격하게 쪼개진 단위가 아니었습니다. 농부들에게 중요한 것은 시계의 초침이 아니라, 해가 뜨고 지는 주기와 계절의 변화였습니다. 즉, 시간은 자연의 흐름 속에서 순환하며, 인간은 공동체와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살아갔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도 시간은 교회의 종소리에 의해 측정되었습니다. 기도, 노동, 휴식의 순서는 종교적 질서에 의해 결정되었고, 개인의 생산성보다 공동체적 의무가 중심이었습니다. 따라서 시간은 ‘개인의 자산’이 아니라, 모두가 공유하는 공동체적 자원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르네상스 이후 과학혁명과 도시 상업의 발달은 시간관을 조금씩 바꾸었습니다. 기계식 시계의 보급은 시간의 측정을 정밀하게 만들었고, 점차 사람들은 시간을 쪼개어 관리할 수 있다는 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자본주의적 사고로 넘어가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2. 근대 자본주의와 ‘시간=돈’의 등장
‘시간=돈’이라는 구절은 흔히 벤저민 프랭클린의 글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748년 “시간은 곧 돈이다”라고 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곧 재산을 잃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프랭클린의 말은 단순한 충고가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핵심 구절이었습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니라, 이윤을 창출하는 경제적 활동으로 정의되었습니다. 노동 시간은 곧 생산량과 직결되었고, 따라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개인과 기업 모두에게 필수적인 과제가 되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이 사고는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공장제 생산이 도입되면서 노동자는 엄격한 근무 시간표를 따라야 했고, 한 시간 동안의 노동이 얼마의 생산물을 만들어내는지가 세밀하게 측정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간은 추상적 흐름이 아니라, 측정 가능하고 교환 가능한 경제 단위가 된 것입니다.
결국 근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시간은 개인의 자유로운 흐름에서 벗어나, 경제적 자산으로 환원되었고, ‘시간=돈’이라는 공식은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규율로 자리 잡았습니다.
3. 오늘날의 시간관: 효율성과 성찰 사이에서
현대 사회에서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희소 자원으로 여겨집니다. 우리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일정 관리 앱, 생산성 도구, 시간 관리법 등을 끊임없이 찾습니다. 기업 역시 직원의 근무 시간을 비용으로 계산하며, ‘시간 단위 생산성’은 기업 경쟁력의 핵심 지표가 됩니다.
하지만 이 사고방식은 개인에게 과도한 압박을 주기도 합니다. 쉬는 시간조차 ‘생산적인 휴식’으로 정당화해야 하고, 자유로운 여가조차 ‘자기계발’이라는 틀로 해석되어야 하는 사회는 결국 인간을 시간의 노예로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근대 자본주의가 만든 ‘시간=돈’의 사고방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시간을 다시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을 단순히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과 의미라는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결국 질문은 이것입니다. “시간은 돈일 뿐인가, 아니면 삶 그 자체인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시간관을 성찰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시간과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