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경제학은 단순히 부를 측정하는 학문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학문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GDP와 같은 전통적 지표가 경제 성장을 설명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사람들의 삶의 질과 만족도를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최고선(eudaimonia) 개념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는 인간의 궁극적 목표가 단순한 쾌락이나 부가 아니라, 선한 삶과 조화로운 행복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고대의 행복론과 현대 복지경제학은 어떤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1.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관: 쾌락을 넘어선 ‘최고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삶의 목적을 설명하면서, 모든 활동에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이를 ‘최고선(善, eudaimonia)’이라 불렀습니다. 최고선은 단순한 감각적 쾌락이 아니며, 물질적 부의 축적도 아닙니다. 그는 행복을 “탁월한 덕(arete)을 실현하며 이성적으로 살아가는 삶”에서 찾았습니다.
즉, 행복은 순간적인 기쁨이 아니라, 삶 전체에 걸친 조화로운 성취입니다. 좋은 인간관계, 공동체적 삶, 지혜와 덕을 실천하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부는 행복의 수단일 수는 있지만, 행복 자체는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행복관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소비와 성장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부가 늘어난다고 해서 진정한 행복이 따라오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2. 현대 복지경제학: GDP를 넘어 행복을 측정하다
현대 경제학에서도 행복은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복지경제학(welfare economics)은 단순히 경제적 효율성을 넘어서, 분배와 삶의 질을 함께 고려합니다. GDP가 성장하더라도 국민 대다수가 불행하다면, 그것은 진정한 경제 발전이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행복지수(Well-being Index)와 세계 행복 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입니다. 이 지표들은 단순한 소득 수준뿐 아니라, 건강, 교육, 사회적 신뢰, 자유, 환경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합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최고선과 연결됩니다. 행복은 물질적 부의 총량이 아니라, 다차원적인 삶의 질로 정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Amartya Sen)의 역량(capability) 접근법도 이 맥락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그는 행복이란 단순히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곧, 행복은 자유로운 선택과 사회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3. 행복의 경제학이 주는 교훈: 개인과 사회의 균형
아리스토텔레스의 최고선과 현대 복지경제학은 결국 하나의 질문에서 만납니다.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삶의 균형을 모색하는 태도로 나타납니다. 단순히 소득을 늘리기 위해 일에 몰두하기보다, 관계, 건강, 자기 성찰을 함께 돌보는 삶이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곧, 행복을 ‘총량적 소득’이 아닌 ‘삶의 질적 조화’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정책적 시사점을 줍니다. 정부는 단순한 성장률보다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복지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교육, 의료, 안전망 강화, 환경 보호 같은 분야가 행복에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즉, 복지경제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최고선을 현대적으로 구현하는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행복의 경제학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행복은 부의 크기에서 오는가, 아니면 삶의 방식에서 오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경제학이 단순한 수학적 모델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위한 학문임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